고린도전서 12장, 선 줄로 아는 착각 | 『성령으로라야 분별되느니라』 1회
1장 형제들아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노라 (고린도전서 12:1-3, 10:1-13)
교회를 오래 다녔고 봉사도 거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잘 믿고 있다'는 그 생각이 오히려 걸림돌이라면 어떨까. 유영복 목사의 강해집 『성령으로라야 분별되느니라』는 고린도전서 12장 강해를 시작하면서 이 물음부터 꺼낸다. 은사 이야기에 앞서 내 믿음이 정말 서 있는지 먼저 보자는 것이다.
포인트 1. 선 줄로 생각하는 자의 착각
설교는 광야의 이스라엘에서 출발한다.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신 백성이었지만 다수가 우상을 섬기고 원망하다 광야에서 쓰러졌다. 설교자는 그들이 스스로 "선 줄로" 알았다는 데 눈을 둔다(p.15). 그러고는 어느 칼럼이 짚은 한국 교회의 문제를 옮긴다. 아주 잘 믿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p.15). 고린도 교회에 보낸 경고가 오늘 교회에도 그대로 닿는다는 읽기다.
포인트 2. 신앙 훈련,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교회당에 이름만 올리면 신자로 여기는 풍토를 설교자는 안타까워한다(p.16).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1학년이 어깨와 허리를 펴는 데 여섯 달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신앙도 그런 훈련이라고 말한다(p.16). 광야의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같은 눈으로 읽는다. 낮에는 그늘로, 밤에는 불로 백성을 지키신 결과 허리가 펴지고 자세가 곧아졌다고 본다(p.19).
"변화 — 힘듭니다. 그냥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부림쳐야 합니다." (『성령으로라야 분별되느니라』 p.16)
포인트 3. 회개하는 생활은 정리에서 시작된다
세 번째 포인트는 뜻밖에 살림 이야기다. 설교자는 정리, 정돈, 청소, 관리를 다른 말로 하면 회개라고 한다(p.19). 그릇 하나, 마당 하나 깨끗이 못 쓰면서 마음 닦는 일을 말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뒤따른다(p.19). 자식과 살림에 쏟는 신경과 힘을 하나님 앞으로 옮겨 보자는 권면도 이어진다(p.19).
설교 끝에서 유영복 목사는 믿음으로 살다 당하는 시험과 말씀대로 살지 못해 당하는 시험을 나란히 놓는다(p.20). 둘이 무엇이 다른지는 책에서 직접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요즘 뉴스로 다시 읽기
지난 9월 22일 국민일보는 목회데이터연구소 등이 펴낸 『한국교회 트렌드 2027』을 소개하면서 교회 출석과 기독교인 정체성이 서로 떨어져 나가는 흐름을 '크리스천 디커플링'이라는 말로 전했다. 신앙은 지키되 교회와는 거리를 두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진단이다.
- 「AI에게 묻는 성도, 강단 떠나는 목회자…"판이 바뀐다"」, 국민일보, 2026.09.22 (기사 보기)
이 설교는 방향이 반대인 걱정에서 출발한다. 교회당에 이름을 올려 두면 믿는 것으로 여기던 풍토다(p.16). 그래도 두 이야기는 한 물음에서 만난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믿음이 서 있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교자는 그 틈을 메우는 길로 훈련과 회개하는 생활을 꼽는다.
오늘 해볼 한 가지
오늘 저녁, 집 안에서 오래 손대지 않은 곳 한 군데를 치워 보자. 싱크대 서랍 한 칸이어도 좋고 현관 신발장이어도 좋다. 치우는 동안 '이만하면 됐다'고 여겨 온 내 신앙의 구석이 어디인지 함께 떠올려 본다. 설교자가 말한 회개하는 생활은 이렇게 작은 데서 시작된다(p.19).
다음 회 예고: 서론 「성령으로라야 분별되느니라 — 신통(神通)의 길」 (고린도전서 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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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 ▶ 성경 통달하는 법? 성령으로라야 분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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