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공간을 여는가 | 「세계관으로 보는 세상」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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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문화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읽는 연습장을 엽니다. 세 가지 확신과 사실·영역·선물·왜곡·회복의 다섯 걸음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법을 함께 익힙니다.

아침에 휴대폰을 켜면 뉴스가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새 기계가 나왔다, 누가 무슨 말을 했다, 어떤 영화가 화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런 소식을 지나칩니다. 그런데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물음을 자주 받았습니다. "목사님, 이 뉴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봐야 하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매번 답을 쥐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남이 내려 주는 결론보다 스스로 읽는 법이 더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이 공간은 그 읽는 법을 함께 익히는 연습장입니다. 정답을 나눠 드리는 곳이 아닙니다. 같은 렌즈를 같은 순서로 대 보면서 눈을 길러 가는 곳입니다. 그 눈은 우리 의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성경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1)라고 말씀합니다. 헤아리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세 가지를 믿고 시작합니다

첫째, 중립인 것은 없습니다. 뉴스 한 꼭지에도, 광고 한 편에도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정보일 뿐"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지 않으려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선하고, 비틀린 것은 그 방향입니다. 기술도, 시장도, 예술도, 국가도 그 자체로 악하지 않습니다. 헤르만 바빙크는 하나님의 계시가 창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로 어그러진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기독교 세계관』, 1904, 78쪽). 문제는 그것이 어디를 향하느냐입니다.

셋째, 감탄과 분별을 함께 붙듭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재능과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마음이 끝내 향하는 곳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무조건 찬양하지도, 무조건 정죄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이 셋 밑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 삶의 온 영역 가운데,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으시는 곳은 한 치도 없습니다."(1880년 자유대학교 개교 연설 「영역주권」) 뉴스가 다루는 곳 어디에도 주님과 상관없는 땅은 없다는 뜻입니다.

다섯 걸음으로 읽습니다

앞으로 모든 글과 영상은 같은 순서를 밟습니다.

  1.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보여 준 것과 약속한 것을 나누고, 출처와 날짜를 확인합니다.
  2. 영역. 가정, 교회, 국가, 시장, 기술 가운데 어디의 일인가요?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삼키고 있지는 않은지 봅니다.
  3. 선물. 여기 담긴 선한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질서, 그 밑에 깔린 사람들의 진짜 갈망을 찾습니다.
  4. 왜곡. 무엇이 비틀렸나요? 무엇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지, 숨은 전제를 끝까지 밀면 어디에 닿는지 묻습니다.
  5. 회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요? 말씀이 무엇이라 하는지, 이웃 사랑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은 무엇인지 찾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사실을 보기 전에 해석부터 하지 않고, 선한 것을 찾기 전에 비판부터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J. 그레셤 메이첸은 학문과 예술을 버리지도, 거기 무관심하지도 말고 마음껏 일구되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치자"고 했습니다(「Christianity and Culture」, Princeton Theological Review 11권, 1913, 5쪽). 다섯 걸음의 끝이 회복인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몇 가지 선을 지키겠습니다

사실과 해석을 섞지 않겠습니다. 사실에는 매체와 날짜를 달겠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편들거나 반대하자고 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는 정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조롱하지 않고, 주장과 그 밑의 생각을 다루겠습니다. 신학자의 말은 원전에서 찾아 출처를 밝히고, 성경은 개역개정으로 장절을 달겠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글은 일주일에 한 편, 블로그와 유튜브에 함께 올릴 생각입니다. 첫 글은 최근 공개된 테슬라 로드스터, 이른바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이야기입니다.

세상 소식은 대개 어둡고 시끄럽습니다. 그래도 이 공간의 글은 비판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둠을 들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어둠에도 비추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엡 5:14).

이번 주 연습 질문

다음에 뉴스 한 꼭지를 볼 때, 해석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세요. "이 기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이고, 아직 약속이나 주장에 머문 것은 무엇인가?"

더 읽을 책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원제 Creation Regained, 1985). 이 공간의 기본 틀인 '선한 구조와 비틀린 방향'을 짧고 쉽게 풀어 준 책입니다. 다섯 걸음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신 분께 먼저 권합니다.

인용한 바빙크·카이퍼·메이첸의 말은 원문(네덜란드어·영어)에서 제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성경은 개역개정입니다.

💬 함께 나눠요 · 요즘 내 신앙은 '양'보다 '질'을 향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댓글로 들려주시면 꼭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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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별 연재 목차 · 🤖 AI 교육 과정 · 👤 성정민 목사 소개 · 🎤 강의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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