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안경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물어야 할 것 |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 가르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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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두고 AI 안경 부정이 잇따랐습니다. 포이트레스의 '위조' 개념과 카이퍼의 영역주권으로 이 일을 읽고, 정직·은혜·정체성이라는 그리스도의 빛을 함께 찾습니다.

시험 전에 감독관이 안경을 쓴 수험생을 한 명씩 확인합니다. 그때 한 학생이 쓰고 있던 것은 일반 안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험이 시작되자 그 학생은 몸에 지니고 있던 다른 안경으로 바꿔 씁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카메라와 인공지능 기능이 들어 있는 안경입니다. 이달 초 서울의 두 대학 논술 시험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소식을 처음 읽었을 때 제 마음에 먼저 올라온 것은 "요즘 아이들이 어쩌다…" 하는 혀 차는 소리였습니다. 그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자 안경 너머에 있는 수험생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① 사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도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10월 3일 서울시립대, 10월 10일 연세대 수시 논술고사에서 AI 안경을 쓴 수험생이 잇따라 적발되었습니다. 두 학생 모두 일반 안경으로 검사를 받은 뒤 시험 중에 바꿔 썼다고 합니다(여성신문 10.14, 머니투데이 10.14, 신아일보 10.15).

교육부는 13일 각 대학에 감독을 강화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5일 수능 수험생 유의사항을 공개하면서 스마트안경을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으로 명시했습니다. 1교시 전에 제출하지 않고 시험 중에 쓰고만 있어도 그 시험은 무효가 되고, 다음 해 수능에도 응시할 수 없습니다. 가져오기만 하고 쓰지 않았다면 그 시험만 무효가 됩니다. 2027학년도 수능은 11월 19일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그 학생들이 안경으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보도마다 "가능성"을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② 영역: 이것은 누구의 일인가

이 일은 학교와 시험의 영역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뿌리는 가정에 닿아 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가정과 학문 같은 삶의 영역들이 국가에서 존재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높은 권위"에 순종한다고 말했습니다(『칼빈주의』, 1899, 116쪽, 필자 번역). 특히 가정에 대해서는 결혼과 평안과 교육의 권리를 가진 영역이고, 그 권위는 "정부가 허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같은 책, 123쪽).

감독을 강화하는 일은 국가와 학교가 맡은 몫입니다. 감독 교사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목소리도 함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독관은 아이의 안경까지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아이의 마음까지 살피지는 못합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성공인가"를 가르치는 일은 하나님이 가정과 교회에 맡기신 일입니다. 그러니 이 뉴스는 시험장의 일이기 전에 우리 집 식탁의 일입니다.

③ 선물: 무엇이 선한가

먼저 선한 것부터 보겠습니다. 작은 안경테 안에 카메라와 인공지능을 넣는 기술은 사람에게 주신 놀라운 재능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읽어 주고 낯선 말을 옮겨 줄 수 있는 도구입니다. 공정한 시험을 지키려고 규정을 고치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수고도 선합니다.

시험장에 앉은 수험생들 안에 있는 갈망도 그 자체로는 악하지 않습니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심어 두신 갈망입니다. 문제는 그 갈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입니다.

④ 왜곡: 무엇이 위조되었나

번 포이트레스는 요한계시록을 풀면서, 악은 새것을 지어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것을 위조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합니다. "위험은 위조품이 진짜로 오인될 수 있다는 데 있다"(JETS 40/3, 1997, 412쪽, 필자 번역). 위조품이 끌리는 까닭도 그것이 하나님의 것을 흉내 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417쪽).

AI 안경은 무엇을 위조했을까요? 실력을 위조했습니다. 땀 흘려 배우는 과정 없이 결과만 가져오려 했습니다. 더 깊은 곳에서는 가치를 위조했습니다. "점수가 곧 너다"라는 거짓말입니다.

포이트레스는 이런 위조가 "제도화되어 있어서, 한 문화에 잠겨 있으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418쪽). 저는 이 문장 앞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을 가른다고 말해 온 문화, 친구를 경쟁자로 세워 온 줄 세우기, "너만 잘되면 된다"는 말. 이 공기 속에서 자란 아이가 손을 뻗은 것이 AI 안경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 학생의 잘못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부정은 부정이고, 그 대가도 정당합니다. 다만 성경은 우리 주님이 무리를 보실 때의 마음을 이렇게 적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적발된 학생을 조롱하기 전에, 그 아이를 지치게 만든 경쟁과 불안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 경쟁을 함께 만든 사람이 우리 어른들이라는 것도 저는 인정합니다.

⑤ 회복: 그리스도의 빛은 어디서 비치는가

그래서 이 뉴스는 부모와 교회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성공이라고 가르쳤는가?"

입으로는 "정직이 제일"이라고 했지만 성적표를 받은 날 우리 얼굴은 무엇을 말했습니까? 교회 광고 시간에 우리는 누구의 합격을 축하했고, 누구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빛은 세 군데에서 비칩니다.

정직.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고 물으십니다. 원하는 대학을 얻고도 정직을 잃으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성공은 높은 점수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 3:23) 하는 삶입니다.

은혜. 넘어진 아이에게도 문은 닫히지 않았습니다. 평가원 유의사항을 보면, 응시자격이 정지된 사람도 정지 기간이 끝나고 인성교육을 마치면 다시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1:9)라고 약속하십니다. 실패한 아이를 끝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그것이 은혜를 아는 공동체입니다.

정체성. 아이들이 가장 들어야 할 말은 "몇 점 받았니?"가 아니라 이 말씀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4). 점수가 아니라 이 사랑이 아이를 지킵니다. 이 사랑을 아는 아이는 위조품이 필요 없습니다.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작은 순종 하나를 제안합니다. 수능을 앞둔 자녀나 교회 학생에게 결과를 묻는 대신 이렇게 말해 주세요. "네 점수가 어떻게 나와도, 너는 하나님께 그리고 나에게 귀한 사람이다." 교회는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수험생 모두를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연습 질문

다음에 "합격", "성공" 같은 말을 들을 때,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무엇으로 위조하고 있는가?

더 읽을 책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Calvinism: Six Stone-lectures, 1899) 3강 「칼빈주의와 정치」. 가정과 학문과 국가가 저마다 하나님께 받은 몫이 있다는 '영역주권'을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 원본은 공개 자료입니다(archive.org/details/calvinismsixston00kuyp). 한국어판은 『칼빈주의 강연』으로 나와 있습니다.


참고: 동아일보(뉴시스) 2026.10.17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61017/134858981/1 · 여성신문 2026.10.14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3278 · 머니투데이 2026.10.14 https://www.mt.co.kr/policy/2026/10/14/2026101319244487149 · 신아일보 2026.10.15 https://www.shina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72266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유의사항」 2026.10.15 https://www.suneung.re.kr/boardCnts/view.do?boardID=1500229&boardSeq=5096829&lev=0&m=0301&s=suneung · V. S. Poythress, "Counterfeiting in the Book of Revelation as a Perspective on Non-Christian Culture," JETS 40/3 (1997): 411-418 · A. Kuyper, Calvinism: Six Stone-lectures (Amsterdam: Höveker & Wormser, 1899). 대가 인용은 모두 원문에서 필자가 옮겼습니다. 성경은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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