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말을 안 해요? 침묵의 뜻 | 『나는 네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 서평
▶ 영상으로 먼저 보기: 『나는 네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 해설 (약 9분)
"싸운 것도 아닌데 남편이 말을 안 해요." 저녁상 앞에서 "응", "그냥" 두 마디가 전부고, 아내는 혼자 있을 때보다 둘이 있을 때 더 외롭다. 먼저 제목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네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의 "네 번째 남자"는 외도나 삼각관계 이야기가 아니다. 남편 저자 한 사람이 결혼생활 동안 거쳐 온 자기 자신의 네 단계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다(p.290). 아내 저자도 같은 틀로 "저 역시 네 명의 남자와 살아왔습니다"라고 받는다(p.291).
부부 대화 안 통해요, 그 침묵은 무엇일까
책은 저자 부부가 사흘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침묵을 꺼낸다(p.21). 그리고 그 침묵에 이름을 붙인다.
"침묵은 말의 부재가 아니었다. 기대의 포기였다." (『나는 네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 p.22)
결혼 8년째에 싸움조차 없는 "이상한 평화"가 찾아왔을 때 오히려 무서웠다는 고백이 이어진다(p.40). 상담실에서 만난 결혼 12년차 부부의 경우, 남편에게는 편한 침묵이 아내에게는 "죽음 같다"는 말로 돌아왔다(p.42). 같은 조용함을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르게 겪는다.
남편 쪽 사정도 책은 들여다본다. "남자는 울면 안 돼" 같은 말을 들으며 자란 남자아이가 감정을 누르는 법부터 배운다는 것(p.69-70), 상담을 받으며 저자가 자기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p.74-75)이다.
아내가 자꾸 울어요, 그때 남편이 한 일
5장에서 저자는 부끄러운 밤을 털어놓는다. 다툼 끝에 아내가 소리 죽여 울던 밤, 그는 TV 소리를 키웠다(p.51-53). 나중에 상담사에게서 "눈물은 대부분 '나를 이해해달라'는 신호"라는 말을 듣는다(p.54). 그 뒤로 그는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무슨 마음이야?"라고 묻는 법을 배운다(p.57-59).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 엇갈린 장면도 있다. 결혼기념일에 비싼 식당을 예약했는데 아내가 바란 건 편지 한 장이었다(p.32-33). 부부학교 강사이자 부부상담가인 저자(p.293, p.299-300)도 이렇게 헛짚었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남편 저자는 20대부터 50대까지 자신을 네 사람으로 나눠 부른다. 나만 알던 20대 후반, 네 아이의 아빠였지만 늘 집에 없던 30대, 비로소 아내와 아이들 말이 들리기 시작한 40대, 그리고 지금 50대다.
"저는 네 명의 다른 남자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나는 네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 p.290)
요즘 뉴스로 다시 읽기
서울신문 기사를 보면 40~64세 중장년 가운데 집안일은 부부가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크게 늘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집은 훨씬 적었다. 생각과 실천 사이의 거리가 10년 전보다 오히려 벌어졌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이 책을 겹쳐 읽으면 그 거리가 낯설지 않다. 저자는 큰 결심 대신 "감정온도 유지 5분 루틴"이라는 다섯 단계를 내놓는다(p.269-270). 결혼 15년차 부부가 이 루틴을 시작하고 한 달 만에 나온 말이 "남편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p.270).
- 「"집안일 함께해야" 중장년 64%…현실은 22%」, 서울신문, 2026.09.24 (기사 보기)
누가 읽으면 좋을까, 결혼 20년차 권태기 부부
싸우지는 않는데 대화가 줄어 걱정인 결혼 10~20년차 부부에게 맞는다. 교회 소그룹이나 부부학교에서 함께 읽을 책을 찾는 사역자에게도 괜찮다.
이 책이 스스로 밝힌 한계도 적어 둔다. 저자는 "이 책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함께 질문하는 책이다"라고 쓴다(p.11). 기독교 신앙의 틀 위에서 결혼을 설명하는 대목이 길어서(p.96-100, p.128-137) 신앙이 없는 독자에게는 낯설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남편이 말을 안 하면 사랑이 식은 건가요?
저자는 상담을 받으며 자기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고 깨달았다(p.74-75). 책은 침묵을 사랑이 없어진 증거로 보기보다 기대를 접어 가는 신호로 읽는다(p.22).
제목만 보면 불륜 이야기 같은데요?
아니다. "네 번째 남자"는 남편 저자 자신이 거쳐 온 네 단계를 가리킨다(p.290). 아내 저자도 같은 뜻으로 "네 명의 남자와 살아왔다"고 쓴다(p.291).
기독교 부부 회복 책인가요?
그렇다. 창세기와 에베소서 같은 성경 본문으로 결혼을 풀이하는 장이 여럿 있다(p.96-100, p.1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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